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Diary

나의 할아버지, (故)이희용 박사님

추석이어서 그런지. 할아버지 생각에 인터넷을 뒤져봤다. 할아버지는 원자력연구소의 물리학자셨는데, 과거 60~70년대 지면 신문들에 어떤 기사들이 있는지 궁금해졌다.
Google이 2008년에 시작했다는 Google News Archive는 아쉽게도 과거의 한국신문들 업데이트가 되지 않아있는 것 같아, 2009년 중순부터 서비스가 시작된 Naver Digital News Archive를 이용해 검색을 해봤다.

경향신문, 동아일보, 매일경제신문 등 지면매체에 물리학분야, 태양전지 개발, 이외 각종 과학분야 인터뷰 등에 대한 할아버지 기사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던데, 이 기회에 할아버지에 대해 몰랐던 것도 알게되고 할아버지의 일에 대한 열정을 느끼면서, 한편으론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건가 반성도 하고 있다. 사진이 나와있는 기사 중 몇가지를 골라봤다.

정보화 사회와 공업기술 (1971년 3월 2일 경향신문)

정보화사회의 '정보화 사회와 공업기술' 제목의 (故)이희용 박사 관련 기사

기사 내용에 따르면, 지금(1970년대 초반)은 정보가치 자체가 큰 수익을 가져오는 시대이며, 공업분야는 정보가치에 따른 수익차가 큰데, 이러한 기술개발을 염세한 기업들의 자금으로만 사업화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을 비판하신 내용의 기사다. 과학자로서 국가발전을 위한 과학적 아이디어를 실용화 하기까지의 고충을 토로하고 계신 것 같다. 사람들은 정보화사회라는 단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지 궁금하다.


국무총리상에 빛나는 이희용박사와 VDH이온 주입기 및 반도체소자
(1973년 9월29일 경향신문)

국무총리상에 빛나는 이희용박사와 VDH이온 주입기 및 반도체소자(故)이희용 박사와 VDH이온 주입기 및 반도체소자

1973년 당시, 반도체 소자의 접합이 비용이 많게는 15만달러에 이르고 사용이 불편했는데, 이를 2천달러 미만의 비용으로 해결 가능하도록 한 획기적인 발명이라고 소개되었다. 다른 연관 기사에는 미국과 일본의 특허모방을 우려해 할아버지는 자세한 설명은 거절하셨다고 나와있었다.

내가 몰랐던 사실은,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와세다대학 졸업 후 일본원자력연구소에서 일하셨다는 것.(일본 핵잠수함 원자로가 이곳에서 개발되었다 한다.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무슨 연구를 하셨을까.)  해방 후에는 국비 유학생 1호로 미네소타대학에서 공부도 하시고, 국내에서는 중앙대와 성균관대에서 교수로 계시다가 이후 한국원자력연구소로 옮기신 것 같다. 내가 태어나던 해에는 국민훈장 모란장도 받으셨다 한다.

국가를 위한 마음이 크면서도 감투를 혐오하시고 학문에 대한 열의만큼은 강직하셨던 할아버지. 저 하늘에서 나를 보시며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. 솔직히 나 자신은 많이 부끄럽다.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 투성인걸.
밖을 보니 비가 많이 오는데 할아버지 묘자리는 편하실지 궁금하다. 이번 추석은 아버지의 업무관련 자료작성을 도와드려야 하는 관계로 전 가족이 추석을 반납하게 되었는데, 할아버지께서 섭섭해 하시진 않을런지. 바쁜 일들 정리되는대로 따로 찾아가 뵈어야겠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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